요나, 하나님을 피해 달아난 선지자의 길
요나, 하나님을 피해 달아난 선지자의 길
요나 1:1-17
함께 읽을 말씀: 요나 2:1-10; 3:1-10; 4:1-11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려 했습니다.
요나의 도망은 단순히 낯선 도시가 무서워서였을 가능성만은 아닙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중요한 도시였고,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강력하고 잔인한 나라였습니다. 훗날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제국이 됩니다. 요나에게 니느웨는 단지 선교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괴롭히고 위협하는 원수의 땅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를 바랐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의 경고를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 사실이 요나에게는 기쁨이 아니라 불만이 되었습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 그 자비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했지만,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거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보다 자신의 정의감과 민족적 감정을 더 크게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바다의 폭풍을 통해 그를 멈추게 하시고, 큰 물고기를 통해 그를 살리시며, 두 번째로 니느웨에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한 니느웨를 향한 자신의 긍휼을 통해 요나의 좁은 마음을 넓히려 하십니다. 요나의 길은 도망의 길로 시작되지만,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도록 부름받는 길입니다.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원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
요나서 1장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들의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악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악을 모른 척하거나 불의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폭력과 죄를 보셨고, 심판의 경고를 전하도록 요나를 보내십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말씀인 동시에 회개로 부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지만, 죄인이 돌이켜 살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파괴를 즐기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마지막 부르심입니다.
요나에게 이 명령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니느웨가 심판받아야 할 악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할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심판만 원했고,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에게 임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악과 불의가 심판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회복의 기회를 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모습보다, 그들이 벌을 받는 모습을 더 원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내 마음속 분노와 복수심을 하나님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만 원하는가, 아니면 그 은혜가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흘러가기를 바라는가?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아래로 내려가는 요나
하나님께서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요나는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 동북쪽, 앗수르 땅에 있었고, 다시스는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세계의 서쪽 끝을 상징하는 먼 항구로 여겨졌습니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본문이 보여 주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요나서 1장은 요나가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가고, 배 안으로 내려가며, 배 밑창으로 내려가 잠듭니다. 뒤이어 그는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피하려는 길은 자유를 향한 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나는 여호와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지하신 하나님에게서 실제로 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가 피하려 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도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불편하게 들려오는 말씀을 피하고, 용서하라는 명령을 외면하며,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다른 이유로 미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는 드리면서도,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삯을 지불합니다. 하나님을 피하는 길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자유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 영혼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요나는 혼자 도망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불순종은 함께 탄 선원들을 죽음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우리의 불순종은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폭풍 속에서 잠든 선지자, 기도하는 이방 선원들
요나가 배를 타자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고,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 배가 거의 깨지게 됩니다. 선원들은 두려워하며 각기 자기의 신에게 부르짖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런데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 잠들어 있고, 이방 선원들은 두려움 가운데 자기들이 아는 방식으로라도 신을 찾으며 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선장은 요나를 깨우며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선지자에게 이방 선장이 기도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폭풍을 일으킨 원인이 자신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멈추게 하셨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기보다, 배 밑창에 내려가 잠듭니다. 불순종은 우리 영혼을 둔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들려도,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이 보여도, 우리는 현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잠들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선원들은 제비를 뽑고, 제비는 요나에게 뽑힙니다. 그들은 요나에게 묻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느냐?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느냐?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요나는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바다를 건너 그분에게서 도망하려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른 교리를 알고도, 그 교리가 요구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더욱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분임을 깨닫고, 요나가 그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선원들은 요나보다 하나님의 권능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 생명을 살리기 시작한 은혜
선원들은 요나에게 바다가 잔잔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큰 폭풍이 자기 때문인 줄 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에는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불순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죽음의 위협을 받는 현실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은 즉시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지로 돌아가기 위해 힘껏 노를 젓습니다. 낯선 히브리 선지자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그의 생명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방 선원들은 요나가 섬긴다고 말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바다가 곧 잔잔해집니다. 선원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망치던 배 위에서, 오히려 이방 선원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요나의 불순종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도망치는 선지자의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이면서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해도 하나님이 일을 이루신다고 해서 불순종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는 폭풍과 바다를 통과해야 했고, 자신의 도망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을 주었는지 마주해야 했습니다.
큰 물고기, 심판과 구원이 만나는 자리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켰고, 요나는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요나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면이지만, 단지 신기한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물고기는 요나에게 심판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자리입니다. 바다는 고대인에게 죽음과 혼돈의 상징이었고, 요나는 그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 바다로 들어갔지만, 하나님은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요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큰 물고기는 요나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그의 도망을 멈추게 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은혜의 감옥과도 같은 자리입니다.
요나서 2장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시편을 닮은 언어로 가득합니다. 그는 환난 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바다 깊음 속에 던져졌고, 물이 영혼까지 삼키며, 깊음이 자신을 둘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진 사람이 선원들이었음에도,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단지 사람들의 손에만 맡겨진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심판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봅니다. 이것은 자신이 당한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돌아갈 길을 찾는 믿음입니다.
요나는 “내가 주의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짧은 고백은 요나서 전체의 중심입니다. 구원은 이스라엘 사람의 소유도 아니고, 요나의 공로도 아니며, 인간의 자격과 경계에 매인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명령하시고,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냅니다. 요나는 다시 땅 위에 섭니다. 도망자의 길은 끝났고, 두 번째 부르심의 길이 시작됩니다.
두 번째 부르심, 다시 니느웨로
요나서 3장은 처음과 거의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은 요나에게 다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처음에는 다시스로 갔지만, 이제는 일어나 니느웨로 갑니다.
두 번째 부르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지만, 그를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선지자에게 다시 말씀을 맡기십니다.
우리도 실패한 뒤에 하나님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졌고, 잘못했고, 도망쳤으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회개와 책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실패보다 큽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다시 부르시고,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순종의 길을 걷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 메시지는 매우 짧고 엄중합니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니느웨 왕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재 위에 앉습니다.
왕은 사람과 짐승까지 금식하게 하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니느웨의 회개는 단지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악한 길과 폭력에서 돌이켜야 했습니다. 참된 회개는 눈물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은혜의 문이 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지만, 악인이 돌이켜 살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니느웨의 회개를 싫어한 요나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자, 요나는 크게 싫어하고 성을 냅니다. 요나서 4장은 이 선지자의 마음을 충격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몰라서 도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도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이 고백은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을 때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은혜가 니느웨에도 적용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랑했지만, 그 은혜가 원수에게 흘러가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에게는 자비를, 원수에게는 심판을 원했습니다.
이것이 요나의 가장 깊은 문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 선지자라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지 못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에게까지 허락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향해 “저 사람들은 절대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결정해 놓고 있지는 않은가? 상처 입은 사람에게 용서가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피해의 고통과 악의 책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감정과 경계보다 크며, 회개하는 죄인에게 열려 있습니다.
박넝쿨 아래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
요나는 니느웨 성읍 동쪽에 앉아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초막을 짓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고, 요나의 불쾌한 마음을 풀어 주십니다. 요나는 박넝쿨로 인해 매우 기뻐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하나님은 벌레를 예비하셔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십니다. 박넝쿨이 시들고, 하나님은 뜨거운 동풍과 강한 햇볕을 보내십니다. 요나는 다시 죽기를 구하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 요나는 자신이 성내어 죽기까지 할 만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사라진 박넝쿨 하나를 잃고 깊이 슬퍼합니다. 그런데 니느웨 성 안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 있고, 가축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이 질문으로 요나서는 끝납니다. 요나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 열린 결말은 독자에게 질문을 넘깁니다. “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겠느냐? 너는 네 작은 손해와 불편에는 민감하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생명에는 무감각하지 않으냐?”
우리는 요나처럼 내 박넝쿨에는 민감할 수 있습니다. 내 편안함, 내 명예, 내 계획, 내 감정이 상하는 일에는 크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이들의 고통,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명,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의 영혼에는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그늘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니느웨를 향한 은혜는 정의를 버린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니느웨는 실제로 악한 도시였고, 그들의 강포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심판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니느웨의 회개에는 악한 길과 폭력에서 떠나는 변화가 요구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의 역사는 니느웨와 앗수르가 이후에도 악을 지속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나훔서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악에 대한 면허증이 아니며, 회개 없는 폭력과 교만을 영원히 용납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나서의 핵심은 정의와 자비 중 하나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죄인이 돌이킬 때 기꺼이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되 복수심을 거룩하게 포장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되 악과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가장 깊이 만납니다. 십자가에서 죄는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담당하셨습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회개하는 모든 죄인에게 용서와 새 생명의 길을 엽니다. 니느웨 사람도, 요나도,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요나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 밤낮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땅속에 사흘 밤낮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땅 위로 나왔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미워하여 도망쳤지만, 예수님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나는 마지못해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했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자원하여 가시고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요나는 자신 때문에 폭풍이 일어났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폭풍 같은 심판을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좁은 마음을 넘어,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하게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하여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민족과 계층, 원수와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선포됩니다.
맺음말|도망자의 길을 긍휼의 길로 바꾸시는 하나님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달아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지만, 그 은혜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문제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폭풍으로 그를 멈추게 하시고, 큰 물고기로 그를 살리시며, 두 번째 부르심으로 다시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불순종 속에서도 선원들을 여호와께로 이끄셨고, 니느웨의 회개를 통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사람, 용서하라고 하신 사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자리, 정의와 긍휼을 함께 실천하라고 하신 부르심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마음속 니느웨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기뻐하면서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은혜가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좁은 마음보다 넓고, 우리의 원수 사랑보다 크며, 우리의 판단보다 깊습니다.
하나님은 도망자의 길을 멈추게 하시고, 그를 다시 긍휼의 길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요나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면서도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기뻐하는 믿음의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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