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
에덴의 동쪽
해가 떠오르는 동쪽은 대개 시작의 방향으로 여겨진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이 오는 자리이며, 사람의 눈이 새날을 기다리는 곳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동쪽은 조금 더 서늘한 방향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 서게 된 곳이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니라 잃어버린 임재를 등지고 살아가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말한다. ‘동쪽’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케뎀(qedem)은 동쪽이라는 방향과 함께 ‘옛날’, ‘태초’를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동쪽의 문 앞에는 인간이 잃어버린 처음이 놓여 있다. 죄는 단지 한 계명을 어긴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던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일이었다. 인간은 동산 밖에서 빵을 먹고 자녀를 낳고 땅을 일구어야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돌아갈 수 없는 문이 남아 있었다.
가인은 그 문에서 더 멀어진다. 그는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거한다. 창세기는 인간의 죄가 깊어질수록 그 발걸음이 동쪽으로 향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불순종과 자기 변명의 걸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어디에서 멀어졌는지도 잊은 채 낯선 땅에 집을 짓는 존재가 된다.
성막의 구조는 이 잃어버린 길을 조용히 기억하게 한다. 성막의 출입문은 동쪽에 있었고, 예배자는 동편 문으로 들어와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 서쪽의 지성소를 향해 나아갔다. 죄로 말미암아 동쪽으로 밀려난 인간이, 피 흘림과 씻음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동선이다. 물론 성막의 방향 자체가 모든 구속을 기계적으로 상징하는 표지는 아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추방과 성막의 예배를 함께 읽을 때, 하나님께서 막힌 길을 끝내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 동쪽으로 나아갔고, 훗날 다시 동쪽 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돌아온다. 심판은 임재의 상실이지만, 언약의 하나님은 상실을 마지막 문장으로 두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는 성전의 참된 실체로 오셔서, 죄인이 두려워하던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셨다. 히브리서는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소에 담대히 들어간다고 말한다. 불칼 앞에서 멈추어야 했던 인간에게, 십자가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 아니라 은혜로 열리는 새롭고 산 길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에덴의 동쪽은 있다. 후회가 오래 머무는 자리, 관계가 끊어진 자리, 하나님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운 뒤 마주한 황량한 자리이다. 그러나 동쪽은 추방의 끝만은 아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이를 찾으시기 시작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해는 오늘도 동쪽에서 떠오르지만, 은혜의 길은 그 빛을 따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향으로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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