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나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나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기독교의 고백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 매우 낯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배고파하시고, 눈물을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분명 사람 아닌가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으며, 하나님이라면 왜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는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 질문은 기독교 신앙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훌륭한 인간 스승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구주로 믿을 것인가는 복음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성경과 정통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이 본래 사람이었다가 훗날 하나님이 되신 분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잠시 사람처럼 보이신 것이라고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참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된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되죠?”라는 질문에는 중요한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 예수가 뛰어난 삶을 살고 신적인 지위에까지 올라갔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인간이 신격화된 분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삶을 베들레헴의 탄생에서만 시작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어서 14절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인간이 하나님으로 승격된 사건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성을 취하신 사건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이기를 그만두고 인간으로 변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영원하신 성자께서 신성을 버리지 않으신 채, 우리와 같은 참된 인성을 취하여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뜻입니다.

바울도 예수님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말합니다(골 2:9). 예수님은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나 하나님이 보내신 가장 높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육체 가운데 나타나신 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증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만 속한 이름, 영광, 권세와 사역을 지니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을 가리키는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죄인을 찾아오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꾸짖지 않으시고 받으십니다(요 20:28-29). 유대교 전통 안에서 하나님 외의 존재에게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매우 중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받으셨다는 것은 그분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자, 서기관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막 2:5-7). 그들의 질문 자체는 옳았습니다.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므로 죄 사함의 권세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문을 피하지 않으시고,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께만 드려야 할 경배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 경배했고, 부활하신 예수님께도 경배했습니다. 천사와 사도들은 자신에게 경배하려는 사람을 막았지만, 예수님은 경배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동일한 찬양과 존귀와 영광이 돌려지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계 5장).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참된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고백만 강조하면, 그분의 인간성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실제 인간의 몸과 영혼을 지니신 참된 사람이셨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갓난아기로 태어나셨고,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해지셨습니다(눅 2:40). 배고프셨고(마 4:2), 목마르셨고(요 19:28), 피곤하셨으며(요 4:6),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우셨습니다(요 11:35).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셨고, 십자가에서 실제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슬픔과 시험을 실제로 경험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예수님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멀리서 인간의 고통을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아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참 인간이셨지만 죄인은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처럼 참된 인성을 지니셨으나, 성령으로 잉태되어 원죄와 자범죄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셨기에 죄인을 위한 완전한 대속 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한 분의 인격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니신 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 반, 사람 반이 섞여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반쪽 하나님도 아니고 반쪽 인간도 아닙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두 인격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들인 성자께서 한 인격으로 인간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성경의 이 증언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논의했고, 주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혼합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뉘지 않고, 분리되지 않게” 두 본성을 지니신다고 정리했습니다. 이 표현은 성경을 넘어 새로운 비밀 지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이나 신화적 존재로 축소하지 않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정돈한 것입니다.

이 교리는 논리적 모순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같은 점에서 동시에 무한하면서 유한하셨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인성에 따라 배고프시고 피곤하시며 성장하시고 고난받으신 참 인간이십니다. 서로 다른 본성에 따라 서로 다른 성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인간은 유한한데, 어떻게 무한하신 분이 사람이 되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매우 깊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보다 크시고 초월하시는 분이시면서도, 동시에 자기 백성에게 가까이 오시는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좁은 인간 몸 안에 갇히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신성을 잃거나 축소하지 않으신 채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다르시기에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자유롭게 인간성을 취하여 피조세계 안에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기를 비웠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이나 신성을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분이 신성을 버렸다고 말하지 않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성자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자기 이익을 위하여 붙들지 않으시고, 낮아져 인간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멀리서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자리로 들어오셨습니다. 구유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를 향했고,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가까이 찾아오셨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깊은 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왜 기도하셨고, 왜 모르는 것이 있으셨을까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고백할 때, 복음서에 나오는 몇 가지 장면이 어려워집니다. 예수님은 왜 아버지께 기도하셨을까요? 십자가 위에서 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을까요? 또한 재림의 날과 때는 아들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장면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막 13:32)?

먼저 성부와 성자는 같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동일한 인격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혼잣말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자께서 성부와 가지시는 영원한 사랑과 교제 안에서, 사람이 되신 성자께서 인간의 자리에서 아버지께 완전한 순종을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 그분이 참 인간으로 오셨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어떻게 의지하고 순종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이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고난의 잔이 지나가기를 구하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셨습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뜻의 충돌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참 인간으로서 고난의 무게를 실제로 감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어떤 것을 모르신다고 말씀하신 본문은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정통교회는 예수님이 신성에 따라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며, 인성에 따라 참된 인간의 성장과 제한을 경험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지혜가 자라가셨다고도 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셨다고도 증언합니다. 우리는 이 두 진술을 어느 하나로 지워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신비로운 한 인격 안에서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이 함께 나타남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죽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죽지 않으시는 분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죽으실 수 있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신성 자체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신성은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께서 취하신 참된 인성 안에서 실제로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십자가의 죽음이 단지 한 인간의 죽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죽음을 맛보셨다”는 뜻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언급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본질상 피를 지니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십자가의 속죄는 충분합니다. 단지 죄 없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면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죽으셨기에, 그의 희생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에 완전하고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셔야 했던 이유는 인간의 죄를 인간의 자리에서 담당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이 들어왔으므로,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대표로 순종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과 연약함을 취하셨고, 율법 아래 나셨으며,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서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셔야 했던 이유는 인간의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우리를 하나님께 완전히 화목하게 할 수 없고, 죽음과 심판을 궁극적으로 이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야 죄인을 대신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시기에 그 구원이 영원하며 충분합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성인이나 도덕 교사로만 보지 않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귀하지만, 예수님이 단지 가르침만 남기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와 죽음의 문제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가에만 있지 않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누구이시며 무엇을 이루셨는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인간을 신격화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고 해서 인간도 노력하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이 구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없고,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얻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신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은혜로 하나님의 가족 안에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과 성령의 은혜에 참여합니다. 장차 부활할 때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화로운 몸을 입겠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피조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었다가 하나님이 되신 분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된 인간이 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그의 신성은 인성으로 변하지 않았고, 그의 인성은 신성에 삼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진리는 단지 어려운 교리의 문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죽음을 이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시기에 그는 우리의 슬픔과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의 자리에서 순종하고 고난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육신의 목적은 우리를 압도하거나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로 멀어진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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