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른가요?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른가요?

“나는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을 꼭 믿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신앙의 중심을 건드립니다. 많은 사람은 우주를 지으신 절대자, 삶을 돌보시는 신, 기도할 대상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고 믿는 일에는 망설임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위대한 스승이거나 사랑을 가르친 성인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겠지만, 왜 그분을 믿어야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말하는지는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결코 믿음이 약해서만 생기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라는 말의 뜻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 생기는 질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을 전혀 관계없는 두 가지 신앙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경쟁하는 또 다른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은 매우 넓게 사용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만든 절대자가 있다고 믿는다는 뜻으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울 때 기도할 대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한 종교의 신앙을 가리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수준보다 훨씬 깊습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 자체는 귀신들도 알고 떤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지식만으로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믿다라는 말은 피스튜오(πιστεύω, 피스튜오)입니다. 이 말은 어떤 사실을 머리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신뢰하고 의지하며 자기 자신을 맡긴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배에 올라타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일은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을 의지하며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먼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물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막연한 초월적 힘이나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죄를 심판하시며, 언약을 세우시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다른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둘로 나누어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곧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한 분의 인격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성경과 정통교회는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으로 영원히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한 분 하나님 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실제적 구별이 있습니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부·성자·성령은 각각 하나님이시며, 서로 다른 세 신이 아니라 한 본질을 가지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교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해부할 수 있는 산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성부를 하나님으로, 성자를 하나님으로, 성령을 하나님으로 증언하면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에, 교회는 이 진리를 삼위일체라는 언어로 정리해 왔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 교사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14절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영원한 성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섭리, 율법과 선지자, 언약과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며, 다윗에게 왕권의 약속을 주셨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죄를 책망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상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생각과 욕망에 맞게 상상하기 쉽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을 엄격한 심판자로만 생각하고, 어떤 이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막연한 사랑으로만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성공을 보장하는 힘으로, 또 어떤 이는 고난과 무관한 먼 존재로 تصو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추측으로 만들어 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9). 이는 예수님이 성부와 동일한 인격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성품과 뜻과 구원의 사랑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은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장 3절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싶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봅니다. 병든 자와 죄인에게 다가가시는 긍휼을 보며, 거짓과 위선을 책망하시는 공의를 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심판과 용서가 함께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가장 깊은 문제는 지식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단지 몇 가지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창조주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앞세우는 마음의 반역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는 화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인간이 자기 선행과 종교적 열심만으로 그 간격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더 나은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시고, 참 사람이시기에 인간을 대표하실 수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인의 자리를 대신 담당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과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를 대속이라고 합니다. 대속은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짊어지셨다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합니다. 중보자는 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죄로 단절된 인간을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요 14:6).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기 위한 종교적 우월감의 선언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구원자께서, 죄인을 살릴 길이 자신 안에 있음을 밝히신 사랑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예수님을 거절할 수는 없을까요?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23절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하여 충분히 배우지 못했거나, 신앙의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을 성급히 정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신 아들을 의식적으로 거절하면서, 동시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보다 예수님을 더 높이는 일이 아닙니다. 성자를 믿고 높이는 것은 성자를 보내신 성부를 높이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온 것은 자신의 영광만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경쟁하지 않으십니다. 성부는 아들을 보내시고, 성자는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는 말은 기독교 신앙의 언어 안에서는 완성된 고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받아들이고, 그 아들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을 포함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습니까?

이 질문을 들으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은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몰랐는데, 어떻게 구원받았을까요?

구약의 성도들은 우리처럼 나사렛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알고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한 복의 약속,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영원한 왕,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받는 종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창 15:6). 구약의 성도들은 제사나 율법의 행위 자체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실 속죄와 구원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 믿음이 바라본 구원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도보다 더 밝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약속되었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막연히 기다려야 할 분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분명히 알려진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완벽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 십자가의 대속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랜 시간 그분을 따라가며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부활 이후에도 그들은 성경을 더 깊이 배워야 했고, 성령께서 오신 뒤에야 그리스도의 사역을 더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의문이 사라진 뒤에야 가능한 결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해를 포기하는 맹목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역사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증거를 따라, 아직 다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신실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신가요?”, “왜 십자가가 필요했나요?”,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품는 일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을 숨기기보다 복음서와 성경 전체를 천천히 읽고, 신뢰할 수 있는 목회자와 대화하며, 하나님께 정직하게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사람을 조롱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사람을 자신에게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에는 진리와 사랑을 함께 지켜야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에 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멸시할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라고 믿되, 그 예수님이 원수까지 사랑하시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분임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방식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각 사람의 마음과 영원한 결말을 대신 판정할 수 없습니다. 최종적인 심판은 공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속합니다.

다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감추거나, 모든 믿음이 결국 같은 길이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희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전도는 타인을 이기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사랑하셨다는 소식을 겸손히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구별되시는 성자이시지만,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니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단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아버지께 돌아가는 일입니다.

아직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억지로 확신하는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복음서 속의 예수님을 정직하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시고, 제 마음이 진리를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믿음은 우리의 지적 완벽함에서 시작되지 않고,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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