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광야와 왕궁 사이에서 걸은 믿음
3부. 무너진 시대와 상실의 자리에서 다시 걷는 길
다윗, 광야와 왕궁 사이에서 걸은 믿음
- 사무엘상 23:14-29; 24:1-22
함께 읽을 말씀: 사무엘상 26:1-25; 사무엘하 5:1-5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은 곧바로 왕좌를 뜻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광야의 도망자가 되어야 했고, 왕궁에 들어가기 전에 동굴을 전전해야 했으며, 영광의 면류관을 쓰기 전에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면 곧 성취의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셨다면, 그 길도 곧바로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 사이에 긴 광야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권을 약속하셨지만, 그가 왕이 되는 방식과 때는 다윗의 손에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젊은 다윗을 백성이 칭송하자, 사울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자랐습니다. 그는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은 한때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왕궁을 떠나 광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는 블레셋과 유다 광야, 십 광야와 엔게디의 험한 바위틈을 떠돌았습니다.
다윗의 광야는 단지 정치적 피신처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그의 마음이 빚어지는 자리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제거할 기회를 두 번이나 얻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회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될 기회를 자기 손으로 움켜쥐지 않습니다. 그는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자기 손으로 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망했고, 피할 곳을 찾았으며, 동역자를 얻었고, 하나님께 묻고, 자기 백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와 폭력, 권모술수로 하나님의 약속을 앞당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의 다윗은 왕권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약속을 받은 뒤에 시작된 도망
사무엘상 16장에서 다윗은 베들레헴의 작은 목동으로 있다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시며,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을 택하십니다. 이어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다윗의 승리는 사울의 마음에 감사보다 시기를 낳습니다.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하자, 사울은 그날 후로 다윗을 주목합니다. 그는 다윗에게 창을 던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이용해 다윗을 죽이려 하며, 결국 다윗을 공공연히 추격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충성했고,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으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울의 두려움과 불안의 희생양이 됩니다. 이는 선하게 살면 언제나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지를 보여 줍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궁에서 쫓겨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사람들의 미움과 오해 속에 놓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낯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 할 때에도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고, 정직하게 행동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으며, 선한 마음으로 섬겼는데 오해와 배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왕궁에서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았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만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의 박수와 인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붙드는 법을 배웁니다. 광야는 다윗에게 왕이 될 자격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위기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묻는 사람
사무엘상 23장 앞부분에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해 타작마당을 노략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다윗은 군사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곧바로 자기 판단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가도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서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일라를 구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그일라를 포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의 손에 넘길 것인지 묻자, 하나님은 그들이 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구해 준 성읍에 머물러 배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떠납니다.
이 장면은 다윗의 믿음이 무기력한 운명론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했지만 지혜롭게 움직였고, 하나님의 보호를 믿었지만 위험한 자리에서 벗어났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알아서 지켜 주실 테니 나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따라 책임 있게 행동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내 감정과 욕심만 따르지 말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현실적 판단, 공동체의 조언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아무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는 무모함이 아니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다윗을 붙든 언약의 친구
다윗은 십 광야의 수풀에 머물며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때 요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왕위 계승자로서 누릴 수 있는 자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윗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그는 다윗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고, 광야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믿음으로 격려합니다.
광야의 시간에는 이런 요나단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떠난 것 같고, 앞날이 막막하며,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조차 흔들릴 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들려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참된 믿음의 동역자는 상대를 자기 아래에 두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은혜와 사명을 기뻐하며, 어려운 시간에 함께 믿음으로 서게 합니다.
교회는 서로를 소모시키는 경쟁의 장소가 아니라, 광야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돕는 요나단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단지 “힘내라”는 말만 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함께 기억하고, 실제로 손을 내밀며, 그 사람이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을 지켜야 합니다.
사울의 추격과 인간의 계산
사울은 다윗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사무엘상 23장 14절은 사울이 날마다 다윗을 찾되, 하나님이 그를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요새에도 있고, 광야의 산지에도 있으며, 십 광야의 험한 곳에도 머뭅니다.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피합니다.
십 사람들은 사울에게 찾아가 다윗이 자기들의 지역에 숨어 있다고 알립니다. 사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왕권과 자존심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욕심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내 감정과 내 자리, 내 이익을 지키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의 언어 뒤에, 혹시 사울처럼 두려움과 시기, 통제하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거의 포위할 뻔합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는 산 이쪽에 있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에 있습니다. 다윗은 급히 피하고, 상황은 매우 위태롭게 보입니다. 바로 그때 사울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사울은 다윗 추격을 멈추고 블레셋과 싸우러 갑니다.
다윗은 사람의 계산으로는 피할 수 없는 위기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그곳은 셀라하마느곳, 곧 분리의 바위 혹은 도피의 바위라고 불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길을 여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울의 군대를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위기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다윗의 구원은 늘 극적인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계속 광야에 머물러야 했고, 삶의 불안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한 번 구원하신 뒤 곧바로 왕궁으로 데려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매일의 피난과 기다림 속에서 다윗을 지키십니다. 우리도 한 번의 큰 응답만 은혜라고 여기기보다, 매일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동굴 속에서 찾아온 기회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을 마친 뒤, 다시 다윗을 찾기 위해 삼천 명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엔게디 광야로 옵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의 험한 절벽과 동굴이 많은 지역입니다. 사울은 길가의 한 굴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 굴 깊은 곳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말합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 날이니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이 아무 방어 없이 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윗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도망 생활을 끝내고, 왕이 될 길을 열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다윗의 사람들은 이 기회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며 다윗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모든 좋은 기회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방법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벱니다.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았지만, 왕의 옷자락을 벤 뒤에도 마음이 찔립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을 때, 사무엘의 옷자락이 찢어졌고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왕권을 찢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벤 장면은 왕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사람들에게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악을 선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쫓기고 있으며, 사울의 폭력과 불의를 분명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제거하여 왕좌를 얻는 일을 자기 손으로 하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뜻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을 단순히 “권위자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교훈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기름부으신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왕권을 자신에게 주실 것을 이미 약속하신 독특한 구속사적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 본문은 어떤 지도자도 비판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울의 죄를 숨기지 않으며, 다윗도 사울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위험한 궁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광야에서 피하며, 사울의 잘못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학대나 폭력, 부당한 권위 아래 있는 사람에게 “그냥 참으라”거나 “아무 도움도 구하지 말라”고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사람은 피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공동체와 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거절한 것은 안전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악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앞당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을 죽일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사용하여 자기 왕권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일라를 구했고, 사람들을 이끌었으며, 위험에서 피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죄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회를 모두 놓치는 무기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방법으로는 목적지에 이르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도 때로 어떤 기회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 길을 택하면 더 빨리 성공할 것 같고, 상대를 무너뜨리면 내 자리가 확보될 것 같으며, 조금만 거짓말하거나 부당한 방법을 쓰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결과만 보고 방법을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인가를 묻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죄를 사용할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거짓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왕좌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사울 앞에 선 다윗의 겸손과 진실
사울이 굴에서 나온 뒤, 다윗은 그를 따라 나가 큰 소리로 “내 주 왕이여”라고 부릅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로 옷자락을 보여 줍니다. 그는 “내 손에 악이나 죄가 없나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왕을 해하려는 사람이 아님을 밝힙니다.
다윗은 사울을 향해 분노를 쏟아 내기보다 하나님께 판단을 맡깁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습니다. 자신이 복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 하나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자기 존재를 함부로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왕이 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신 같은 도망자를 추격하는 일이 얼마나 부당하고 헛된지를 드러내는 겸손한 항변입니다. 그는 사울의 죄를 말하지만, 자신을 높이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말을 듣고 울며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너는 나를 선대하되 나는 너를 악대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윗이 선으로 자신에게 갚았음을 인정하고,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후손을 끊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 고백이 그의 마음의 완전한 변화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무엘상 26장에서 그는 다시 다윗을 추격합니다. 죄인은 눈물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돌이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의 회개와 삶의 회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말에 감동받아 무방비로 왕궁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안전한 곳으로 물러납니다.
이것은 용서와 지혜가 함께 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회개를 가볍게 조롱해서는 안 되지만, 반복되는 폭력과 거짓 앞에서 무분별하게 자신을 위험에 내어놓아서도 안 됩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지만, 사울의 위험한 곁에 머물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은 용서할 줄 아는 마음과 분별력 있는 경계를 함께 요구합니다.
두 번째 기회, 더 깊어진 다윗의 믿음
사무엘상 26장에서 십 사람들은 다시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알립니다. 사울은 다시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을 추격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진영에 깊은 잠을 내리시자, 다윗과 아비새는 밤에 그 진영에 들어갑니다. 사울은 잠들어 있고, 그의 머리 곁에는 창과 물병이 놓여 있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한 번에 사울을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이번에도 상황은 다윗에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손을 대고 무죄하겠느냐”고 말합니다. 대신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져옵니다.
다윗은 멀리 떨어진 산 위에서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부릅니다. 그는 사울을 지키지 못한 아브넬을 책망하고,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을 창과 물병으로 증명합니다. 다윗은 자기 무죄를 분명히 하지만, 복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다시 “내가 범죄하였도다”라고 말하며 다윗을 축복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에 기대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귀하게 여김을 받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사울은 자기 길로 가고 다윗도 자기 길로 갑니다.
다윗의 믿음은 한 번의 선한 선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시험 속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믿음은 한 번의 감동적인 결단이 아니라, 같은 유혹이 다시 찾아올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광야를 지나 왕궁으로, 그러나 왕좌보다 먼저 배운 것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곧바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유다 지파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칠 년 반을 다스립니다. 그 후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사무엘하 5장은 다윗이 삼십 세에 왕이 되어 사십 년 동안 다스렸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왕좌에 앉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다윗도 마침내 왕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함은 왕이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왕이 되기 전에 광야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에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묻는 법을 배웠고, 사람의 배신과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 앞에서 복수의 칼을 거두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법으로 이루려 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왕궁에 오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완전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그는 밧세바 사건에서 큰 죄를 범하고, 자신의 권력을 잘못 사용합니다. 광야의 다윗이 보여 준 믿음이 귀하지만, 다윗 자신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보다 더 크시고 완전하신 왕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보다 크신 왕,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참된 왕이십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도 오랫동안 거절당하고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된 왕이셨지만,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떠난 쉬운 길을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이 왕으로 세우려 할 때에도 인간적 영광의 길을 택하지 않으셨고, 십자가를 통해 왕권을 드러내셨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 앞에서 자기 손으로 왕좌를 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 앞에서 천군 천사를 부를 수 있으셨지만,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다윗의 기다림은 그리스도의 더 깊은 순종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의 인내를 배우되, 다윗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광야에서도 함께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믿음과 소망을 주십니다.
맺음말|광야에서 왕의 마음을 배우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곧바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을 피해 광야와 동굴을 떠돌았고, 배신과 두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다윗을 버려진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다윗의 마음을 빚으셨습니다.
다윗은 왕이 될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방법으로 왕좌를 얻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수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었고, 자기 손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광야의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속은 받았지만 성취는 멀어 보이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길은 열리지 않으며, 부당한 사람과 상황 앞에서 내가 직접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다윗의 믿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기다림은 포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묻고, 책임 있게 행동하며, 필요한 경계를 세우고, 선을 행하면서도 죄의 방법으로는 목적지에 이르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광야에서 다윗은 왕좌를 기다리기 전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앞날을 조급하게 움켜쥐기보다, 오늘의 광야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믿음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며, 가장 적절한 때에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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