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믿음
아브라함,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믿음
창세기 12:1-9
함께 읽을 말씀: 창세기 15:1-6; 히브리서 11:8-10
우리의 삶에는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익숙했던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있고, 오래 붙들고 있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으며, 안전하다고 여겼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떠남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곳에는 기억이 있고, 관계가 있고, 예측할 수 있는 내일이 있습니다. 반면 떠나는 길 앞에는 알 수 없는 미래와 두려움이 놓여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바로 그 낯선 길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새로운 땅의 지도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곳에서 어떤 집을 얻을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에 관한 상세한 설명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이 가나안이라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모든 과정과 미래의 형편, 약속이 성취되는 방식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목적지의 세부 사항을 확보한 뒤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움직인 사람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한 뒤에 출발하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는 모든 길을 계산할 수 없지만, 우리보다 앞서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떠남은 무모한 모험이 아니라, 약속의 하나님께 자기 삶을 맡기는 믿음의 순종이었습니다.
바벨의 탑 이후, 한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 뒤에 놓여 있습니다. 바벨 사람들은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탑을 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자신들의 힘과 기술과 연대를 통해 안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이름과 안전의 탑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바벨의 이야기 뒤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바벨 사람들은 스스로 이름을 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름을 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바벨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하늘에 오르려 한 이야기이고,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한 사람을 찾아오셔서 복의 통로로 세우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종교적 열심도 때로는 바벨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더 높아지고, 더 인정받고,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은혜와 복이 세상에 흘러가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사람이어서 먼저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유브라데 강 저쪽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출발점은 타고난 경건이나 특별한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었습니다.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발견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 잃은 인간을 먼저 찾아 부르신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은 자기 자랑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 믿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나를 붙드시는가”에서 시작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하나님의 명령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고향은 익숙한 문화와 생활의 자리입니다. 친척은 혈연과 관계의 울타리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정체성, 안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가장 의지하기 쉬운 세 겹의 안전망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은 모든 성도가 반드시 고향을 떠나거나 가족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며,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중요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의지하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는 안전은 무엇인가? 내 삶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인가, 아니면 출신과 소유와 인간관계인가?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실제로 익숙한 자리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새로운 사명지로 부르시고, 예상하지 못한 환경으로 옮기시며, 오래된 습관과 관계의 방식을 정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더 자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 고향을 떠나게 하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서 떠나게 하시고, 사람의 인정에 묶인 삶에서 떠나게 하시며, 과거의 상처와 실패가 규정하던 자기 이해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떠남은 단순한 상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뒤, 무엇을 향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떠남은 공허한 방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출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을 빼앗기 위해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은 은혜와 참된 생명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 부르시는 분입니다.
약속으로 길을 밝히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큰 민족으로 이루고, 복을 주며,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복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 한 사람의 번영만을 위한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종착지로 부르지 않으시고, 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이 아브라함에게 머물지 않고, 땅의 모든 족속에게 흘러가게 하십니다. 창세기 12장 3절은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방향을 보여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담의 죄 이후 땅은 저주 아래 놓였고, 가인의 후손은 폭력으로 가득했으며, 홍수 이후에도 인간의 죄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벨탑 이후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이러한 깨어짐과 저주와 흩어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온 땅의 족속을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택하시되, 그 한 사람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성경은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선포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을 복음의 약속으로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민족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선교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재능, 시간과 물질, 말씀의 깨달음은 나만을 위한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복음을 듣고,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복은 움켜쥐는 데 있지 않고 흘려보내는 데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나, 아직 자기 땅은 없었던 사람
창세기 12장 4절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간결하게 기록합니다. 그는 칠십오 세에 하란을 떠났고, 아내 사래와 조카 롯, 모은 재물과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혼자 낭만적인 여행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책임을 안고 낯선 땅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은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장 6절은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즉시 그 땅의 주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나그네였습니다.
이 점이 믿음의 길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는다고 해서 낯섦과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약속의 땅에서 더 큰 기다림을 배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땅에서 장막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는 아들을 약속받았지만, 오랜 세월 자녀 없이 기다렸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 사실을 깊이 해석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도 외방에 있는 것 같이 거류하여 장막에 거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향해 걸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땅의 어떤 도시보다 더 견고한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장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집을 짓고, 직장을 얻고, 관계를 맺으며,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려 애쓰다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는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순례자입니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은 사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습니다. 이후 그는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도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의 삶에는 장막과 제단이 함께 있었습니다. 장막은 나그네의 삶을 보여 줍니다. 그는 어디에도 영원히 정착한 사람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제단은 예배의 삶을 보여 줍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장막만 있으면 우리는 불안한 방랑자가 될 수 있고, 제단만 말하면서 현실의 책임을 외면하면 공허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며 현실을 살았고,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장막과 제단이 필요합니다. 장막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 사람이 아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돈과 명예와 성공이 우리 존재의 최종 근거가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제단은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게 합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 기쁨을 얻었을 때와 상실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성이나 궁전을 세우기보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을 드러내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바벨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탑을 쌓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는 무엇이 더 많이 쌓이고 있습니까? 나를 드러내는 탑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입니까?
약속이 지연될 때, 믿음은 무엇을 붙드는가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순히 떠남의 결단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의 현실은 늙어 가는 자신과 사래, 그리고 상속자가 될 수 있는 종 엘리에셀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이것은 믿음 없는 사람의 불평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붙드는 사람이 드리는 질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 앞에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장막 밖으로 이끌어 별들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으로는 이미 가능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약속을 다시 들려주십니다.
창세기 15장 6절은 믿음의 핵심을 보여 줍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자기의 능력, 도덕성, 업적을 믿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어떤 정보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그 약속 위에 삶의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의를 벌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약속을 믿는 자를 받아 주시고 의롭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이 말씀을 붙들고, 사람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성취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다만 약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도, 말씀하신 분을 아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8절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나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의 모든 지도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얼마나 오래 머물지, 자녀의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 어떤 위기를 지나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내년의 건강도, 자녀의 미래도, 생업의 형편도, 관계의 변화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왜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지 선명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답을 얻은 뒤에 시작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믿고 오늘의 순종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등불은 먼 산 너머까지 비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딛고 있는 발밑을 밝히고,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인생의 전체 지도를 주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오늘 순종해야 할 한 걸음을 보여 주십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할 자리, 끊어야 할 죄, 용서해야 할 사람, 시작해야 할 섬김, 기다려야 할 시간, 내려놓아야 할 욕심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먼 미래를 알지 못해도, 오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모든 갑작스러운 충동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떠남은 자기 욕망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 기도, 교회의 지혜, 책임 있는 현실 판단, 신앙 공동체의 조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믿음은 무책임한 도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순종입니다.
우리의 떠남이 누군가에게 복이 되게 하소서
아브라함은 복을 받기 위해 부름받았고, 동시에 복이 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우리 안에만 머물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일터, 교회와 이웃을 통하여 그 은혜가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는다고 하면서도 오직 내 문제, 내 성공, 내 평안만 붙들고 있다면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충분히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을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믿음 안에 부름받은 우리는 세상 가운데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믿음의 사람은 화해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정직과 신뢰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상처 입은 사람을 품는 위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는 약한 이들을 돌아보는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말로만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진실이 드러나게 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떠난 길은 그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섭니다. 그에게 주신 약속은 이삭과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의 역사로 이어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열린 구원의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도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넓은 열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의 걸음을 통하여 한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에 복을 흘려보내십니다.
맺음말|약속의 하나님을 따라 한 걸음 걷는 사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던져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했고, 약속의 땅에서도 장막을 치며 기다렸고,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한 번의 출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떠나는 믿음이었고, 기다리는 믿음이었으며, 제단을 쌓는 믿음이었고, 별을 바라보며 약속을 다시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의 삶에서 두려움과 실수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보다 자신의 약속에 더 신실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떠나야 할 자리가 있고, 기다려야 할 시간이 있으며, 아직 받지 못한 약속을 붙들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모든 지도를 달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전체 지도를 주시는 대신, 오늘 순종할 한 걸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 한 걸음을 믿음으로 내딛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계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익숙한 안전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내가 받은 복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갈 바를 다 알지 못해도,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마침내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을 알기에, 오늘도 믿음으로 길을 떠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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